숙고하고 상의했다면 이런 양 극단의 결정은 없었을 것이다.
서독만이 독일을 대표하며 동독과 수교한 나라와 관계를 맺지 않는다는 할슈타인 원칙을 폐기하고 동독을 포용하는 브란트의 파격적 동방정책은 키징어가 수용했기에 뿌리내릴 수 있었다.작가 귄터 그라스는 브란트에게 편지를 보내 나쁜 결혼이라고 비난했지만 ‘화해의 연방정부는 성공적이었다.
홍범도 장군은 1921년 자유시 참변으로 독립군이 희생당하자 솔밭에서 땅을 치고 울었다는 기록이 제시됐다.이들은 ‘군(軍)의 기원이 됐다.중국과 러시아를 관리하기 위해서라도 초당적인 외교가 필요하다.
키징어·브란트·슈미트·콜 총리를 거치는 동안 보수·진보 정권 모두 일관되게 동방정책을 추진했다.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이 지독한 경직(硬直)의 저주에서 풀려날 때 우리는 모두 살 수 있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배출을 핵 오염수 배출로 규정했고.
이번에도 여야 합의는 없었다.보수든 진보든 어느 정부든 예외가 없다.
이와 함께 신속한 구제를 위한 특별법원 설치를 검토해 볼 만하다.정부와 여당은 고발 내용이 불편하고 곤혹스럽고 당장 지지도를 떨어뜨린다고 하더라도 고발자를 공격하는 데 앞장서면 안 된다.
여야 모두 정쟁의 도구로만 인식하다 보니 진실 규명은 늘 뒷전으로 밀리고 고발자의 동기나 의도와 같은 지엽적인 것만 부각돼 왔다.이런 점에서 특별법원을 통해 신고자가 불이익을 받을 경우 신속히 구제가 가능하다.